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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T의 잡학 연구소: 인문학이란 놈을 붙잡았다

교향곡 9번, 그리고 모두 죽었다

by 카산드로스 2025. 6. 24.

베토벤 초상 (Joseph Karl Stieler, 1820년) (이미지 출처: commons.wikimedia public domain)

교향곡 9번의 저주: 음악사에서 현대 심리학까지, 징크스는 어떻게 신화가 되었는가?

"9번 교향곡을 쓰면 죽는다."

음악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징크스는,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되기엔 지나치게 많은 '우연의 반복'을 담고 있습니다.
베토벤, 말러, 브루크너, 슈베르트… 이름만 들어도 숨이 멎을 듯한 이 거장들은 모두 '교향곡 제9번'을 끝으로 삶을 마감했거나, 더는 교향곡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9번의 저주’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심리의 또 다른 산물일 뿐일까요?


1부: 베토벤과 9번 교향곡의 시작 —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교향곡’은 18세기 고전주의 시대부터 유럽 음악 전통의 가장 중심적인 형식이었습니다. 하이든은 104개의 교향곡을 남겼고, 모차르트는 41개를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낭만주의에 접어들면서 교향곡은 단순한 음악 형식을 넘어서 작곡가의 철학, 정체성, 예술관을 담아내는 궁극의 장르로 자리잡습니다.

 

‘9번 교향곡의 저주’라는 이야기의 시발점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입니다. 그는 1824년,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인류 음악사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작곡했습니다. 인류애와 평화라는 거대한 메시지를 품은 이 작품은 음악사의 금자탑으로 평가받았고, 교향곡이 단순한 악곡이 아니라 "인문학적 선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교향곡의 숫자 9는 하나의 상징이 됩니다. 완성의 숫자, 혹은 종결의 숫자로서 말이죠.

이 작품을 끝으로 베토벤은 교향곡을 더 이상 쓰지 못하고 3년 뒤 사망했습니다.

 

이후 후대 작곡가들 중에서도 유독 9번 교향곡을 작곡한 직후 사망하거나, 9번을 넘기지 못한 사례들이 이어졌습니다.

 

-프란츠 슈베르트 (1797–1828)

  • 일반적으로 〈미완성 교향곡〉(8번)과〈그레이트 C장조〉(9번)이 주요 교향곡으로 간주됩니다.
  • 그는 ‘그레이트’을 완성한 직후, 31세의 나이로 병사했습니다.
  • 이후 그는 교향곡 10번을 스케치하긴 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안톤 브루크너 (1824–1896)

  • 브루크너는 9번 교향곡을 완성하려다 4악장을 남긴 채 사망했습니다.
  • 그는 9번을 ‘신에게 바치는 곡’이라 했고, 실제로 마지막 악장을 “내 영혼의 고백”으로 남겼습니다.
  • 4악장은 제자들이 유고를 토대로 복원하기도 했지만, 원래 브루크너의 구상은 미완입니다.

-구스타프 말러 (1860–1911)

  • 말러는 징크스를 회피하려 9번째 교향곡 대신〈대지의 노래 Das Lied von der Erde〉라는 제목으로 교향곡 형식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 그 다음 실제 ‘교향곡 제9번’을 작곡했고, 그 뒤 10번 교향곡을 스케치하다 병사했습니다.

-안토닌 드보르자크 (1841–1904)

  • 그의 9번 〈신세계로부터〉는 마지막 교향곡이 되었습니다.
  • 그는 이후 오페라와 실내악에 집중했으며, 교향곡 10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9번을 쓰면 죽는다”는 인식은 점점 하나의 ‘징크스’로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부: 단순한 우연인가, 반복되는 패턴인가?

그러나 이 징크스를 절대적 진실처럼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다수의 작곡가들이 9번을 넘어 10번, 11번, 15번까지 교향곡을 작곡하며 장수했기 때문입니다.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총 15개의 교향곡을 남김
  • 요하네스 브람스, 카를 닐센, 필립 글래스, 해변의 사무엘 바버 등도 ‘9번 징크스’와 무관하게 활동

즉, '9번의 저주'는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하며, 오히려 특정 시대 작곡가들의 요절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징크스는 실제보다 집단적 상상과 두려움, 문화적 인식에서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과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작곡가들이 9번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혹시 다음 차례인가?”라는 무의식적 부담감을 갖고 작업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건강 문제나 창작 정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3부: 현대 사회 속 ‘징크스의 문화화’: 숫자 너머에 숨은 인간 심리

베토벤 이후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두려워하게 된 데에는 단순한 ‘죽음’ 이상의 무언가가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이 우연을 의미화하고, 반복을 서사화하며, 실패를 외부 요인으로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 심리입니다.

이런 심리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는 그것을 ‘징크스의 문화화’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1) 숫자 징크스: 불길한 숫자와 행운의 숫자

➤ 13번의 공포: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Triskaidekaphobia)

  • 서양 문화에서 ‘13’은 대표적인 불운의 숫자입니다.
  • 이유는 다양합니다:
    •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유다가 13번째 손님이었다는 설화
    • 노르드 신화에서 13번째 신 ‘로키’가 비극을 초래했다는 전설
  • 현대의 영향:
    • 엘리베이터에 13층이 없는 건물, 호텔의 13호실 생략
    • 비행기 좌석번호 생략: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 등은 13번 좌석 없음
    • ‘Friday the 13th’(13일의 금요일)는 공포 영화 브랜드화까지 됨

➤ 동양의 4번 회피: 사(死)의 공포

  •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숫자 ‘4’가 ‘죽음(死)’과 발음이 같아 불길하게 여겨짐
  • 병원, 아파트, 호텔 등에서 4층 → F층으로 표기하는 경우 흔함
  • 심지어 일부 병원에서는 수술실에 4번 방이 없음

➤ 반대의 경우: 행운의 숫자

  • 7: 서양에서는 행운, 신성한 숫자 (무지개 색, 요일, 음악 음계 등과 연결)
  • 8: 중국에서는 부(富)와 관련된 발음으로 인해 길한 숫자. 올림픽 개막일(2008.8.8. 8시 8분), 자동차 번호판 등에서 선호됨
  • 이러한 숫자 신앙은 부동산, 주식, 결혼식 날짜, 시험일 선정 등 삶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침

(2) 스포츠 속의 징크스: 패배의 기억이 만든 신화

스포츠 세계에서 징크스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선수들의 멘탈과 경기 전략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야구의 ‘노히트노런’ 금기

  • 경기 중 투수가 노히트노런을 하고 있으면 절대 말을 걸지 않는 관습
  • 이유: 말을 걸면 깨진다는 믿음
  • 실제로 선수나 해설자가 언급한 순간 깨지는 경우가 있어 스포츠 징크스의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됨

 슈퍼볼 우승 팀의 몰락

  • 미국 NFL에서는 슈퍼볼 우승 팀이 다음 시즌 성적이 부진해지는 경향을 두고 ‘슈퍼볼 챔피언 징크스’라고 부름
  • 실제로 최근 20년간 70% 이상의 우승 팀이 다음 시즌 플레이오프 탈락

 농구의 ‘MVP 수상자 징크스’

  • NBA에서는 시즌 MVP를 받은 선수가 우승을 못 하는 경우가 반복되면서, ‘MVP 저주’라는 말이 생김
  • 예: 찰스 바클리, 칼 말론, 스티브 내쉬 등 MVP 수상자들이 같은 해 챔피언 반지를 얻지 못함

(3) 대중문화 속 징크스: 반복이 만든 서사적 코드

 영화 시리즈의 3편 징크스

  • “시리즈는 3편이 되면 망한다”는 통념
  • 실제로 많은 시리즈가 3편에서 평점, 흥행, 평가 모두 하락하는 경우가 많았음:
    • [스파이더맨 3] (2007): 팬들 사이에서 혹평, 산만한 플롯
    • [고질라 3], [엑스맨 3], [매트릭스 레볼루션] 등도 같은 사례
  • 반면 이 징크스를 극복한 영화로는 [다크나이트 라이즈],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등이 있음

 음악계의 ‘2집 징크스’

  • 데뷔 앨범이 큰 성공을 거두면, 다음 앨범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흔함
  • 이른바 ‘소포모어 슬럼프(Sophomore Slump)’라고도 불림
  • 한국 음악계 예시:
    • 일부 아이돌 그룹이나 인디밴드들이 1집은 신선함, 2집은 부담감으로 평가 절하
  • 반면 이 징크스를 극복하고 2집으로 정점을 찍은 아티스트도 많음 (예: 자우림, 브라운 아이즈, 아이유)

(4) 정치·경제계의 징크스: 패턴의 의미화

 대통령 임기 말 징크스

  • 한국, 미국, 프랑스 등 다수 국가에서 대통령 임기 말에는 지지율이 급락하거나 레임덕 현상이 나타남
  • 이를 ‘임기말 징크스’라고 하며, 예외가 거의 없음
  • 정치 권력의 고립, 언론·야당의 견제 강화, 국민의 피로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주식 시장의 ‘월요일 징크스’, ‘10월 공포’

  • ‘월요병’처럼 월요일에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을 말함
  • 특히 1929년 대공황, 1987년 블랙 먼데이 등이 모두 10월 월요일에 일어나면서 ‘10월 공포’라는 말까지 등장
  • 그러나 이는 통계적으로 우연인 경우가 많음

(5) 문화로서의 징크스: 왜 우리는 믿고 싶어하는가?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통제 불가능한 불확실성 속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징크스를 만들어냅니다.

  • 카르그노믹 효과(Cargonomic Effect): 의미 없는 행위가 긍정적 결과와 연결되면 반복되며 징크스로 강화됨
  • 확증 편향: 징크스가 맞는 사례만 기억하고, 틀린 사례는 무시하는 경향
  • 통제의 환상: 불확실한 상황에서 작은 행위라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려는 욕망

이 모든 것이 모여 징크스를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고착화시키며, 때로는 마케팅 도구나 콘텐츠 아이템으로도 활용됩니다.


4부: 왜 인간은 징크스를 믿는가? — 심리학으로 본 징크스의 구조

‘9번 교향곡의 저주’처럼,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읽어내고, 그 의미를 ‘운명’이나 ‘징크스’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비합리적인 징크스를 이렇게 쉽게 믿고, 때로는 그것에 얽매이기까지 하는 것일까요?

심리학은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핵심 요인들을 제시합니다.

(1) 우연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본능 — 패턴 인식 본능

인간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하는 본능적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패턴 인식 본능(patternicity)’이라 하며, 우연한 사건들 사이에서도 인과관계를 읽어내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 예를 들어, 작곡가 몇몇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사망했을 때, 그것이 통계적으로 드문 우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9번은 죽음과 관련 있다”는 인과성을 만들어냅니다.
  • 이는 생존에 유리한 진화적 습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정글에서 ‘소리’가 났을 때, 그것을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위험의 징조’로 간주한 사람이 살아남았던 것이죠.

관련 개념:

  •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이것을 *Type I error (false positive)*의 산물로 설명합니다.
    → "거기에 뭔가 있다"고 잘못 판단하는 것이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잘못 판단하는 것보다 생존에 더 유리했다는 것입니다.

 

(2)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

징크스는 특히 미래가 불확실할 때 강하게 작동합니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작은 의식이나 반복된 행동을 통해 통제감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제의 환상”이라고 합니다.

  • 수험생이 매 시험마다 같은 옷이나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행동
  •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 전 특정 행동을 반복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신발 끈을 묶는 것

이러한 행동은 실제로 어떤 인과적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통제하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실험 사례:

  • 엘렌 랭어(Ellen Langer)의 고전적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주사위 던지기처럼 무작위 결과조차 자신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3)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 믿고 싶은 것만 본다

인간은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을 강화해주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합니다.

  • 예:
    • 누군가가 “교향곡 9번을 쓰면 죽는다”는 말을 믿고 있다면,
      → 브루크너나 말러가 그 징크스를 ‘증명한 사례’로 남고,
      → 쇼스타코비치나 존 애덤스처럼 9번 이후에도 건재한 작곡가는 '무시'되거나 ‘예외’로 처리됩니다.

결과:

  • 징크스는 점점 강화되고, 그에 반하는 사례는 망각되면서 문화적으로 굳어진 신화로 자리 잡습니다.

 

(4)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 믿음이 현실이 되다

어떤 믿음이 지속되면, 그 믿음이 실제 현실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부르며, 특히 징크스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심리학적 메커니즘입니다.

  • 예:
    • 어떤 작곡가가 9번째 교향곡을 쓰면서 “내가 혹시 그 징크스의 다음 희생자일까?”라는 두려움을 가졌다고 합시다.
    • 이 두려움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작업의 질 저하나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실제로 작곡이 지연되거나 완성도가 떨어지고, 심할 경우 정신적 붕괴나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징크스는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면의 믿음이 현실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5) 기억의 왜곡과 선택적 회상 — 감정 기반 회상 효과

인간의 기억은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 감정 중심의 재구성입니다.
징크스처럼 감정적 충격이 큰 사건은 더욱 생생하게 각인되며, 뇌는 그 기억을 반복해서 재생합니다.

  • 예:
    • “9번 교향곡을 쓰고 죽은 말러”는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지만,
      “10개 넘게 쓰고 장수한 쇼스타코비치”는 덜 인상적이어서 잊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감정 우선 회상(emotionally weighted memory)’이라 하며, 특히 공포, 죽음, 불안과 관련된 사건일수록 뇌가 더 강하게 기억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5부: 징크스는 미신이 아니라, 서사다

"9번 교향곡을 쓰면 죽는다."
이 명제는 과학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징크스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서사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징크스는 비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심리에 있어 매우 실용적이고 적응적인 장치임은 분명합니다.
통제 불가능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고, 불안을 억제하며, 결과에 책임지지 않을 핑곗거리(?)를 찾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 예술가는 ‘9번의 저주’를 두려워하지만, 그 징크스를 ‘창작의 극한’으로 승화시키기도 합니다.
  • 스포츠 선수는 ‘루틴’을 믿지만, 그것이 멘탈을 유지하게 하는 비밀 도구이기도 합니다.
  • 현대인들은 징크스를 농담 삼아 이야기하지만, 그 속엔 살아남기 위한 감정 조절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갈망하고, 우연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징크스’라는 서사를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베토벤이 9번을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사실은, 단순한 음악사의 한 줄이 아니라,

"완성 이후의 공허", 혹은 "정점 이후의 불안"이라는 예술가의 실존적 두려움을 압축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말러는 그 징크스를 피해 ‘9번이 아닌 교향곡’을 작곡하려 애썼고,

브루크너는 ‘신에게 바치는 곡’이라며 두려움을 초월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불안, 망설임, 애도는 오히려 9번이라는 숫자에 신화를 부여했고,

우리는 거기에서 마치 ‘신의 숫자’를 본 것처럼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징크스는 오늘날 영화 시리즈, 스포츠 경기, 주식시장, 정치 리더십, 심지어 시험일의 숫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죽음의 저주’가 아니라, 인간이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구조화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해소하고, 책임을 분산시키며, 패배조차 의미 있는 ‘운명’으로 포장하게 됩니다.

 

결국, 징크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간 심리의 거울입니다.
우리가 어떤 숫자를 두려워하고, 어떤 패턴을 믿는지는 곧 우리가 무엇을 불안해하고, 무엇을 극복하고 싶은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니 교향곡 9번의 저주는 단순한 음악사의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죽음을 상징화하고, 예술을 경외하며, 서사를 통해 삶의 무게를 감당해왔는가에 대한

매우 시적인 질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다음 교향곡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저주는 없다"는 확신이 아니라,
"그 두려움조차 껴안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교향곡 제10번은 그렇게, 아직도 어딘가에서 작곡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것은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